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화려한 명소가 아니라 뜻밖의 일상에서 찾아온다. 파리의 한 구석, 낡은 간판이 걸린 작은 카페에 앉았을 때도 그랬다. 창가에 앉아 따뜻한 크루아상을 한 입 베어 물며 바깥을 바라보니, 출근길 자전거 행렬과 시장 바구니를 든 이웃들이 서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관광객의 시선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하루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때 문득 느꼈다. 우리가 흔히 찾는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진짜 프랑스의 감성은 이런 생활 속 풍경에 담겨 있다는 것을. 낯선 언어가 들려오는 거리에서조차 친근함이 느껴지는 건, 일상의 온도가 어디에서나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프랑스를 여행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화려한 해안 대신 골목길을 택했을 때, 작은 와인 숍 앞에서 만난 주인장은 방금 따온 올리브 이야기를 길게 들려주었다. 햇살 아래 빛나는 유리병 속의 올리브유가 그 순간만큼은 남프랑스의 바다보다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여행이란 결국 눈에 띄는 풍경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돌아와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의외로 가장 마음이 가는 장면은 관광지가 아닌 길모퉁이의 간판, 낡은 의자, 벽에 남은 포스터 조각 같은 것들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공간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흔적들이 오히려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통해 낯선 땅에서 나의 하루와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랑스를 다시 찾게 된다면, 아마 또 유명한 명소보다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동네와 그 일상의 리듬을 따라가고 싶다. 카페의 찻잔 울림, 길가 벤치에 남겨진 낙서, 바람에 흩날리는 전단지까지. 그것들이야말로 프랑스 감성의 본질이고, 여행자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믿는다.
백서연 에디터